요즘 것들은 아바이마을 가면 오징어 순대만 찾아 헤맨다. 피끓는 줄 서서 국물 한 그릇 해치우고 인증샷 찍어 본 것으로 알아주는 척하는데, 그건 관광지 소비일 뿐이다. 진짜 마을의 뼈대를 보려면 식당 앞 처마 밑에 쌓여 있는 구형 명함집을 뒤져야 한다. 내가 수집해둔 1990년대 후반 유행하던 엠보싱 양식의 명함만 해도 수백 장이다. 당시 속초 해안가에서 포장마차로 시작해 건물을 샀던 곳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거 아카이브 해둬야 함. 지금은 거의 사라진 양식이다.
명함집을 뒤질 때 주의할 점은 분명하다. 손톱으로 코팅면을 긁어서는 안 된다. 한번 스크래치 나면 복구 불가다. 앞면에 인쇄된 전화번호 국번만 봐도 식당의 연륜을 가려낼 수 있다. 033으로 통일되기 전 국번을 쓴 곳은 최소 20년차 이상이다. 풍경 사진 위에 활자를 얹어 찍어낸 양식은 웹사이트 제작 도구가 미처 번지기 전에 조판소에서 일일이 맞춘 것이므로 교집합 가치가 확실하다. 단순히 오래된 종이가 아니라 한국 인쇄 산업의 지엽적 단층도 겸한다.
요즘 웹에서는 과거의 식당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없다. 당시에 종이로만 돌던 광고지를 파기하면서 폐업 기록의 대부분이 소실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온라인 매체에서 퍼온 2차 자료로 지표를 신뢰할 수는 없다. 팩트가 아니므로 바로잡아야 마땅하다. 현존하는 식당 중에는 문을 닫은 곳의 터에 들어선 간판 따위를 구분해두는 이형 명함을 보관하는 주인들이 제법 있다. 상호 이력이 바뀐 포장지까지 포함해서 도장 찍힌 영수증 뭉치로 챙겨두는 경우도 있다. 묻어나는 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 그 자리에서 단속 행정이 얼마나 빡빡했는지, 관광객 유입에 맞춰 메뉴판이 어떻게 벼랑 끝에 섰는지까지 육안으로 확인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식사를 하든 안 하든 두 번째 사안이다. 정보 체계를 박물관 자료로서 세팅하는 것이 당면한 목표다. 닳고 없어진 자료를 분류하여 번호를 매기고 개별 포장지로 보호하는 수순에 들어가면 수집만으로 훌륭한 직무가 성립한다. 속초 지역 한정으로 반입 과정을 거친 명함류는 국내 향토 인쇄물 특성상 점점 희귀해지고 있다. 당장 가서 수집 대상을 꺼내보지 않아도 분량보다 질적으로 무장한 목록 하나을 손에 넣으면 아카이빙의 의미가 살아난다. 서랍 한구석에 방치된 독불장군들의 명함을 절대 버려서는 안 된다. 나머지 후대의 평가는 그냥 그렇게 흘러가게 두면 그만이다.